[기고] 백두산 천지를 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백두산 천지/김수근
[기고] 백두산 천지를 담다
북인천신문 | admin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백두산 천지/김수근
(사진제공-김수근(본인제공))
여행은 설렘으로 시작해서 아쉬움으로 끝나야 한다.
이것이 나의 여행에 대한 부동의 지론이다. 설렘이 없는 여행은 유람이요, 관광일 뿐이다. 백두산 얼마나 설레고 그리던 꿈의 염원이던가.
방송대 입학 20주년 기념사업의 하이라이트인 해외여행 건은 시작부터 말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어렵게 추진된 백두산 등정계획, 제각기 학우들의 여행 목적지가 다를 수 밖에 없었던 이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숙원사업이었던 나의 제안으로 이번 백두산 여행이 우연히 결정된 것이다.
무리 없이 추진되는가 싶은 이 여행은 결국 그 값을 톡톡히 치르고 나서야 성사되었던 것이다.
8월말 ~ 9월초, 계절상 천지를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여객기는 두 시간여 비행 끝에 ‘24. 8.31일 동북 길림성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마냥 순조로울 것 같은 여행 일정은 입국 수속 절차부터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돌발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여행일정표가 없다고 공항 관원은 우리 일행을 무려 한시간이나 잡아 놓은 것이다. 여행하라고 비자를 발급해 주고서는 여행일정표가 없다고 막아서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그러잖아도 작금 악화된 한중 외교 관계로 다소 불편한 감정에 공항 당국은 입국 수속에 냅다 불을 지른 것이다.
20명의 단체 관광객은 발이 묶인 것이다. 입국비자는 무엇이고, 아니 의사소통의 부재인가? 도대체 여행일정표가 뭔 대수라는 말인가.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사회주의의 망녕인가? 아직도 개명되지 못한 미개국의 한계인가?
아직도 이런 나라가 있단 말인가. 내심 노여움을 참지 못한다.
다시 한번 비교되는 인천공항의 선진성, 비교 우위성, 세계 제일의 일류공항 면모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새삼 우리 인천공항 관리시스템의 우수성을 절감한다.
(사진제공-김수근(본인제공))
이제 버스는 북중 국경지대인 토문강(두만강)을 향해 달리고 있다. 황혼이 어스름할 무렵인 두만강 국경지대는 예상 외로 한적하기만 하다.
널찍한 배후지를 두고 있는 접경지대를 그들은 관광지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입구에 제법 큰 상가가 있고 국경 옆에 야시장격인 먹거리 시장이 눈에 들어온다. 양 강변이 철책으로 처져 있고, 강폭이 20~30M, 그다지 수량도 많지 않아서 작심만 하면 충분히 넘어갈 지세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관광지라 그런가. 외관상 긴장된 군사 경계지역이라는 것이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여기가 탈북인의 주된 현장이라고 현지 가이드가 전한다.
기념사진 몇 장 찍다가 중국 단속원의 제지를 받는다. 다시 발걸음을 돌리자 버스는 숙소가 가까이 있는 연길 만찬장으로 향한다.
공항에서 국경지대, 다시 숙소까지 왕복 6~7시간의 거리, 밖에는 보슬비가 지척지척 내리고 여행객은 만감이 교차한 듯, 여행 노고에 지친 듯 고개를 떨군다.
현지 가이드는 자기소개를 정식으로 하면서 만담을 늘어 놓는다.
버스는 깜깜한 도로를 잘도 달리는데, 중국에서 운전을 잘하려면 4개 大를 졸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들이대’요, 두 번째는 ‘빵빵대’요, 세 번째가 ‘꺾어대’요, 마지막으로 ‘돌려대’라는 것이다. 순간 쓴 웃음이, 아니 폭소가 버스를 진동시킨다.
필자가 볼 적에는 ‘밟아대’ 하나를 더 첨가시켜야 할 것 같다. 많지 않은 중국여행에서 체감하는 교통질서는 가히 아수라장에 가까운 것은 누구나 인지하는 사실일 것이다.
조선족인 가이드는 유머 감각이 있어서 여행 내내 지루한 버스 이동시간을 그나마 단축시키는 것이었다.
중국에서의 단체 식사라야 늘 그렇고 그런 것이라지만, 함께하는 학우들, 같이 참여해 준 후배 및 그 배우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오롯이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 그 자체였으니.
만찬 후 시간은 호텔의 숙소에서 뒤풀이로 이어진다. 조그마한 우리 객실에서 자리를 만들어 벌어지는 10여명 학우들의 정담은 끊일 줄 모르고 이어진다.
이 향연은 정겨운 학우들의 무간한 담소에 하루의 노고를 다 녹아내고 내일을 위한 새 에너지 충전의 소중한 시간임에야.
다음날 고단한 컨디션에도 일찍 눈이 떠졌다.
바로 오늘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백두산 천지를 보러 가는 날 아닌가. 현지 가이드는 벌써 호텔 현관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가 묻는다. 오늘 천지를 볼 수 있겠냐고? 오늘은 날씨가 좋아 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90 퍼센트는 가능하다고 장담한다.
내심 기대가 차오른다.
조식을 드는 둥 마는 둥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백두산 일정을 가는 도중 우리 민족과 선각자의 터전이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산실인 용정 비암산(琵岩山) 풍경구(風景區)에 잠시 들렀다.
(사진제공-김수근(본인제공))
우리 가곡에도 있듯이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이 흐르고 비암산 정상에 일송정(一松亭)이 있는 곳이다. 그다지 높지도 않는 산이건만 무개(無蓋)셔틀버스를 타고 10여분 올라간다.
아아~ 그렇게 우리 민족이 비장하게 부르던 일송정(一松亭)은 산 위 조그만한 단(壇)위에 초라하게 서 있는 것이다.
독야청청(獨也靑靑)한 일송(一松)은 간 데 없고, 노인과 젊은이 두 사람이 장기를 두는 초라한 조각 형상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아무리 이국땅이라 하지만 이렇게 관리가 허술할 줄이야. 아쉽고 서글픈 마음을 뒤로하고 기념사진 몇 장을 남기고 다시 셔틀버스에 오른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이제 백두산(白頭山)서파(西坡)천지(天池)를 향해 치닫고 있다.
필자야 지리도 방향도 모르건만 버스는 서너 시간을 달려 잠시 허기진 배를 채우러 정해진 반점(飯店)에 잠시 들른다.
산속의 식단이라 그런가. 각종 산채로 버무려진 비빔밥은 일품이 되고도 남는다.
버스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날씨는 아주 화창해서 더 바랄 것이 없는 기후이다. 가이드는 다시 천지를 볼 확률이 99퍼센트라고 상향 조정한다. 내심 쾌재를 부른다.
백두산 산신령은 수염이 없다. 여신령(女神靈)인 것이다.
그래서 천지 기후가 예측 불허인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어저께 밤에 천지를 보여 달라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벌거벗고 여신령에게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그 정성이 통한 것일까.
이제 일반 버스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산중턱 대기소에 이르고 일행은 다시 백두산 당국이 운영하는 현지 버스로 갈아 탄다.
아스팔트가 깔린 길을 쉬지 않고 버스는 내달린다. 도로 양변에는 인간의 때가, 손길이 닿지 않는 자작나무 산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가문비나무인가 한랭성 식물군이 북한계선 식생을 차지한다.
쭉쭉 뻗은 수림(樹林)들이 세상 근심을 잊은 듯 마냥 싱그럽기만 하다. 이 천혜의 원시림인 백두산 자연 경관은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민족의 영산(靈山)백두산 천연림이 광활하게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버스는 마지막으로 가파르게 산길을 내달으면서 다시 작은 버스로 환승한다.
이제 막바지 단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제는 울창한 숲은 보이지 않고 작은 관목 및 목피가 벗겨진 이름 모를 나무가 각자 제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아마 극도로 추운 동해(凍害)를 입어 그러하였으리라.
산 정산은 대부분 하얀 부석(浮石)과 장시간 백설(白雪)로 덮여 있어, 백두산(白頭山)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하였으리라. 전후좌우로 웅장한 봉우리와 가없는 산줄기가 산해만리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제공-김수근(본인제공))
8월 31일 오후 2시 경 드디어 백두산 천지 입구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는 1,449개의 계단을 짚고 올라가야 한다.
천지는 그냥 쉽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를 보려거든 3천배 대신 이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예를 갖추시오” 응당 그럴 일이다.
안내인이 또 한마디 거둔다. 이제 천지를 볼 확률이 99.9퍼센트라고. 한 발짝 두 발짝 발을 옮긴다.
평소 안 좋은 무릎이 시큰하고 심장이 화끈 달아오른다. 쉬고 걷고 이제 1,000계단을 넘어선다.
이제 남은 449 계단만 넘으면.. 힘이 다시 샘솟는다.
후후~. 가쁜 숨을 내쉬며 마지막 고비를 넘는다.
(사진제공-김수근(본인제공))
아아! 이때 보여지는 저 신천지! 천지 대자연의 절묘한 조화! 우주 삼라만상의 대예술작품이 아니고 무엇이랴.
仙界가 어디요, 人間이 아니로다.
지금 필자는 부정할 수 없는 백두산 천지에 와 있는 것이다.
바다를 펼쳐 놓은 듯, 마치 지상의 호수를 산 위에 올려놓은 듯
새파랗게 쪽빛으로 눈이 시리도록 잔잔한 호수.
이 높은 산 위에 호수가 있다는 것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저 호수에 내려가 손을 담그고 물 한 모금 들이켰으면..
예전에는 천지 언저리까지 내려왔다고 하는데
천지(天池)가 왜 이제 왔는냐고 나무라는 듯, 가슴이 떨리고 아려오는 듯,
그런데 왜 이리도 서럽고 서러운 것이냐?
왜 내 땅에서 못 보고 타지에서 너를 보냐 말이다.
가슴이 저려 온다.
잠시 숨을 고르고 상념에 잠긴다.
내 호(號)가 허산(虛山)이나 어디 민족의 영산(靈山)앞에서 내 호(號)를 칭하리오.
백두산아! 천지야!
내가 너를 잃어버려 타국 입국 시부터 이렇게 수모를 당하는구나.
저 천지 넘어 장군봉이 우뚝 솟아 있고, 이름 모를 봉우리들이 좌우에서 호위하는 모습이 보인다.
백두산은 그네들이 부르는 장백산이니, 천지의 길이 14km, 평균 깊이 213m, 최대수심 384m, 이 수치는 중국측 기록과 조금 차이가 있다.
천지를 시원으로 동쪽으로 두만강에 이르고, 서쪽으로 압록강, 송화강에 이른다. 모든 발원점이 백두산 천지인 것이다.
그뿐이랴.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종주로서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지리산에 이르러 한반도의 중심 산맥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화제를 돌린다.
주역(周易) 하경(下經)의 첫 괘가 백두산 천지(天池)를 가리키는 택산함(澤山咸)( )괘이니, 이르되,
天地ㅣ 感而萬物이 和生하고
聖人이 感人心而天下ㅣ 和平하나니.
觀其所感而天地萬物之情을 可見矣리라.
山上有澤이 咸이니 君子 以하야 虛로 受人하나니라.
이 괘는 젊은 남녀의 교합을 의미하고, 산과 못의 기운이 통하는 산택통기(山澤通氣)의 매우 형통한 괘를 의미한다.
또한 후천세계(後天世界)를 여는 하경의 첫 번째 괘인 것이다.
백두산을 지금에 이르러 불함산(不咸山)으로 불리는 바, 그 이름은 남북이 함(咸)하지 못하는 뼈아픈 분단 실정을 말하는 것이리라.
앞으로 남북이 하나가 되어 우리 한민족(韓民族)이 백두산 천지에서 만세를 부를 그날이 언제이려나.
여기저기서 핸드폰 셔터가 눌러지고 괴성인 듯, 고함소리인 듯 마치 절규하는 소리가 들린다. 적지 않은 인파이거늘 차츰 질서를 찾아간다.
시나브로 천지의 일정은 예정된 다음 여정으로 밀려난다.
아쉬움과 회한에 가슴이 저며 온다.
(사진제공-김수근(본인제공))
천지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금강대협곡(金剛大狹谷)에 이른다
폭이 100~200m, 깊이는 50~100m에 이를 듯한데 그 길이는 종잡을 수 없다.
백두의 그랜드 캐니언에 해당하는 이 협곡은 화산폭발 시 V자 계곡으로 패인 계곡인데 서파의 또 다른 아름다운 대자연의 극치를 보여준다.
기괴한 바위들이 주는 묘미 중의 하나가 앞에서 보면 기린 형상이요, 뒤에서 보면 공작의 모습이 시선을 내내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데크길은 힐링코스로써 조금도 손색이 없는데, 천혜의 원시림을 걸어 내려가는 길에 관광객을 쫓아 내려오는 귀여운 다람쥐들은 또 다른 이색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곧이어 만찬 후 지체된 여정과 피곤한 몸으로 학우들과의 2차 술자리 없이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여지없이 일찍 눈이 뜨였다.
조식을 마친 후 밖을 보니 뿌옇게 하늘이 흐리다.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던 가이드에게 오늘 북파를 볼 수 있냐고 물은즉 볼 수 있다고 한다. 휴우!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니 그런데 웬걸, 잠시 후 다시 나타난 가이드는 폭탄 발언을 쏟아 낸다.
오늘 천지 북파 등정이 당국에 의해 전면 봉쇄되었다고. 순간 필자는 와락 가이드를 껴안았다. 어제 본 천지가 너무 고마워서인가.
3대가 덕을 쌓아야 본다는 백두산 천지.
천지를 못본 사람이 그야말로 천지인 것이다.
백 번 와야 두 번 보는 산이라 백두산이요.
하루에 백 두번이나 기후가 변한다 하여 백두산이라 한다.
실제로 30분 일찍 온 관광객은 보고 30분 늦게 온 사람은 못 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백두산 북파 일정이 취소되고 버스는 장백폭포로 향한다.
가이드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밤새 백두산 산신령께 기도했다는데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옆에 있던 절친이요 룸메이트인 학형이 한마디 거둔다.
옷을 벗지 않고 기도해서 그렇다고. ㅎㅎ
(사진제공-김수근(본인제공))
버스가 장백폭포 대기소에 이르러 비는 더욱 거세게 몰아친다.
아차 우산이라도 챙길 것을..
옆에 있던 친구 처(妻)가 내가 안쓰러운지 친구 우비를 내게 건네 준다.
고맙게 받았지만 나는 이후 여행 내내 이 작은 후의에 코를 끼고 말았다
자기의 우비를 기꺼이 내준 절친인 이 친구는 자기에게 민폐를 끼쳤다고 내내 핀잔을 주는게 아닌가.
격의 없이 얘기하는 이 친구에게 미안하고 무안한 감정이 왜 없겠냐마는
눈총이나 주지 말지.결국 매사에 준비성 없는 내 자신을 탓할 수밖에.
장백폭포(長白瀑布)!
천지 북파의 폐쇄 때문인가 몰려든 엄청난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폭포의 길이가 수직절벽으로 족히 50m는 넘을진대 천지의 물이 이 폭포를 이루고 계곡을 이루어 송화강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들이치는 비바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거의 우비를 썼는데 파랑, 빨강, 노란 우비, 찢어진 우비 등, 우비 색깔도 다양하여 마치 색(色)의 잔치를 여는 듯싶다.
폭포의 경관에 덧붙여 그 한몫을 톡톡히 한다는 생각이 든다.
데크로 이어진 질척한 길을 힘겹게 따라 올라가다 보면 천연 노천이 끓어오르는 장관을 보는데 예전에는 이 물로 계란을 삶아 팔았다고 한다.
40~50분 정도 간신히 올라온 장백폭포는 백두산의 장엄한 광경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백두의 절경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겠다.
꽉 찬 인파로 더욱이 비까지 내리치는 악천후에도 동행인들의 사진을 놓치지 않고 한 컷트, 한 장면 세심히 담아주는 신연태 학형의 노고가 새삼 뇌리에 새롭다.
이제 백두산 여정은 막바지를 향해 내닫는다.
장백폭포에 이어 마지막 일정으로 5G 영상기행!
백두산, 천지를 포함한 중국 전반을 소개하는 IT첨단 영상이 주는 입체감 때문인지 이 영상 관람은 스릴과 서스펜스 등 새롭고 재미있는 볼거리를 실감나게 제공한다.
많은 인파의 줄서기로 인한 중국인들의 양보 없는 매정한 작태를 제외하면.
여행의 마지막 밤인가.
일행은 다시 우리 객실에서 여행의 최종 회포를 나눈다.
정감과 감회를 술 한잔에 새기면서....
연길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가고 있다.
연길에서는 한글 간판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억압과 착취를 피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개척돤 만주, 간도의 땅 연변!
이제는 3대, 4대 세대들이 조국을 잊고 우리말도 차츰 잊어가고 있다고 한다.
웬지 서글픔과 착잡함이 나도 모르게 가슴에 적셔온다.
저들도 우리 민족이거늘 이제는 조선족으로, 소수민족의 하나로서 이 이국땅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한민족의 정체성과 긍지를 갖고 살아가길 바라마지 않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백두여 안녕!
천지여 안녕!
* 03학번 중문과 학우와 멋진 사진을 제공해 준 신연태 학우 및 함께 한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김수근 프로필]
1960년 생
1979년 송도고등학교 졸업
1988년 단국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9년 한국가스공사 입사
2007년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졸업
2020년 한국가스공사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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